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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도시. 스페인 남부 해안가, 안달루시아 지역 '말라가'.)

스페인의 유명한 관광지인 세비야의 플라멩코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같은 큰 관광포인트는 없지만

피카소 생가와  피카소 기념 미술관이 있는 도시이다. 아랍왕국 시대의 요새형 성벽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도시에는 잠깐 지나가는 관광객보다는 어학원 등에 다니며 장기체류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많아서  

스페인 남부지방 특유의 아랍+유럽에 더해 독특한 다문화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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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을 하다 마주친 거리의 탱고공연)

내가 다니던 직장을 집어치우고 혼자서 스페인으로 떠난 것은,

좋아하던 국내 축구팀이 팬을 버린 덕분에 나도 리그따위 버리고 라리가로 떠버리련다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스페인어 정복=세계 정복'이라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나에게 세계 정복이란  세계 어디에든 "내 ***" 같이 부를 수 있는 곳들을 잔뜩 만든다는 개념이기때문에,

사실은 그리 어려운게 아니다.  삼일정도 머물든, 삼년정도 머물든간에,

심정적으로 제대로 그곳을 완전히 내것처럼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정복한 게 아니다.

나에게는  뉴욕, LA, 도쿄 등등이 그랬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함께여서 충분히 그 도시에 마음을 열지 못한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복여행이란, 관광 포인트만 바쁘게 찍고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훨씬 더 느긋하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시덥잖은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누고

돌아 올때는 내가 그곳의  기억을 가져오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도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남겨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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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친구집에서 함께 만들어 먹은, 못생겼지만 최고 맛있었던 쵸코케익)

말라가의 따뜻한 날씨와 곧장 아프리카로 통하는 바다, 맛있는 음식들과 느긋하고 낙천적인 사람들은

직장을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을 최고의 미덕으로 강요당하던 나에게 그야말고 숨통을 틔워줬다.

어설픈 스페인어를 점점 늘려가며, 세계 각국에서 온 그렇게 다양한 나이, 국적, 직업의 친구들을 사귀고....

내가 그들을 기억하는 만큼. 그들도 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지구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멋진 일이 없다. 그때의 나는 일생 최고로 세계 정복에 가까이 있었다.

 

말라가에서부터 나는 로마, 베네치아, 모로코, 일본으로 뻗어 나갈수 있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말라가 시절의  친구들과 행복하게 다시 만났다.

지구의 이곳 저곳에서. 친구의 친구가 내 친구가 되듯이, 친구의 도시가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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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카페, '떼떼리아'. 아줌마가 손수만든 그날의 케익을  파는데 이것 또한 최고!

외국인이 많이 오는 카페인데 알바생이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손님들에게 스페인어를 한마디씩 가르치곤 했다)

 

지금은 다시 직장에 메인 몸이 되어 하루하루를 별 가치 없이 월급날 기다리며 보내지만,

다른 친구들도 모두 자기 자리에서 비슷비슷 다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다만 말라가에서의, 그리고 또 다른 도시들에서 함께 했던 그 여행의 기억들은

언젠가 다시 그곳에 돌아가길 꿈꾸게 만들고, 즐겁게 월급을 모으게 만들고,

사전을 뒤져가며 외국어로 이메일을 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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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발코니. 네르하)

 

'인생은 대나무와 같아서, 가끔씩 마디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거센 바람에 부러질수 있다.

난 지금 마디를 만들러 온거다. '

말라가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했던 말처럼,

그곳에서 머물며, 여행하며 보낸 몇개월은  내 팍팍한 인생에 마디가 되었다.